하루키가 사랑한 작가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문학동네 |
무라카미 하루키를 아시나요? 30대이면서 책을 어느 정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하루키 소설 한두권쯤은 읽으셨을것 같네요. 그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가 바로 F. 스콧 피츠제럴드입니다. 하루키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의 일어 번역판을 썼을 정도입니다.
그 밖에 하루키가 좋아한다고 밝힌 작가는 주로 단편소설을 썼던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도 있으니 관심있으시면 한번 읽어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국내에 번역된 2권의 단편집을 읽어 보았지만 별로 와닿지 않더군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함께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가장 미국스러운(?) 소설로 꼽힙니다. 두 작품 다 너무나 유명해서 국내 독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반면 두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듯 합니다. 저도 <위대한 개츠비>는 읽어 보았지만 피츠제럴드의 다른 작품은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영화화 되지 않았다면 평생 읽어 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저는 소설이 영화화되는 경우 소설을 먼저 읽으려고 합니다. 영화의 시각적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소설을 읽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특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단편소설중에서도 길이가 짧은 작품을 확장해서 영화로 만든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11개의 단편들을 실은 단편 소설집입니다. 이 중에 영화화 된것은 당연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단편입니다. 이 단편은 40여 페이지로 짧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마크 트웨인의 '슬프게도 인생의 최고의 대목이 제일 처음 오고, 최악의 대목은 맨 끝에 온다는 것'을 소설화한 것입니다.
내용은 재즈의 시대(1차 대전 종전 직후 미국 증시 사상 최대 호황기를 거쳐 1929년 주식 대폭락과 함께 꿈처럼 사라진 시대)에 한 철물상의 아들의 일대기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늙은이로 태어나 간난 아이로 죽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는 러브스토리를 상당히 강조한 모양인데 책에서는 크게 다루어 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보통사람의 일생에서 가족, 일, 학교생활과 더불어 사랑이 차지하는 만큼 그려지고 있죠. 전반적으로 인생을 거꾸로 사는 사람의 일생과 주변의 반응을 통한 인생에 대한 풍자극으로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은 무척 재미있었지만 내용 그대로 영화화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영화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더해졌는지 궁금하네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 밖의 단편들
총 11편의 단편 중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젤라빈>의 시작하다만 사랑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젤라빈은 우리나라로 보면 한량 정도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주인공은 이런저런 잡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주사위 노름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한때는 마을에서도 잘사는 축에 끼는 집안이었지만 지금은 겨우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파티에 가게 되고 평소 좋아하던 마을 처녀를 만나게 됩니다.
마을 처녀가 주사위 노름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자 평소 실력을 발휘하여 구해주게 되죠. 이를 계기로 '젤라빈'생활을 처분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리라 결심합니다. 그녀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죠. 그러나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됩니다.
그러자 그는 결심 따위는 한적도 없는 것처럼 다시 '젤라빈'으로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작아지고 무언가 변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 보신적 있나요? 평소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적이 있나요? 그런 마음을 잘 표현한 단편입니다.
이 책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벤자민...처럼 인생에 대한 통찰이 옅보이는 이야기도 있고, <낙타 엉덩이>처럼 엉뚱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현실에 대해 적나라하게 접근한 <행복의 잔해>와 같은 이야기도 있죠.
11개의 단편이 모두 성격이 달라 마치 종합과자세트를 먹는 기분입니다. 달콤한 사탕도 있고 쓴맛나는 과자도 있고 바삭바삭한 웨하스도 있죠. 편하게 읽으면서 인생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