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을 읽고서
부제는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이다. 동양의학과 역학에 대한 입문서 격이라고 책을 소개하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동양의학과 역학이라는 것이 동의보감과 사주명리학을 말하는 것 같다. 둘 다 간접적으로도 접해본 적이 없으니 어떤 책이며 어떤 사상 또는 철학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동의보감은 한의사가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의학 전공자가 아니라도 공부하고 관련 책까지 낼 수 있네라는 정도의 생각이 든다. 입문서라고 했으니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좋은 책은 무엇보다 술술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용이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말이 되어야 쉽게 읽힌다. 단어가 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사용되고 문장의 완결성이 있어야 쉽게 읽히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불합격이다. 한자와 영어, 구어와 문어체가 섞여 있어 매끄럽게 읽혀지지 않는데다가 단문과 장문이 섞여 있어 거칠다. 마치 무협지나 대중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동사없이 끝내는 문장도 많다.
몸, 교육, 정치ㆍ사회, 경제, 여성, 가족, 사랑, 운명 등 총 8개의 카테고리를 나누어 짧게 비평하는 에세이 형식의 책인데 각 카테고리의 주제에 명확하게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마구 섞어도 크게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어떤 매체에 기고했던 컬럼을 모아 책을 낸 것 같은데 소재를 TV드라마나 기사등에서 많이 가져온 듯하다. 유행하는 어떤 드라마를 놓고 일반화시켜 사회 행태를 진단하고 비평하는 식이다. 한국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잘 이해도 되지 않는데다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자극적일 수 밖에 없는 드라마를 일반화 시켜서 비평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면에서 책을 보고 있지만 회사에서 직원들을 단체로 모아놓고 외부 강사를 불러 하는 특강을 듣는 기분이다. 소재가 얕으니 주제를 깊이있게 전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책 전반에서 느껴지는 것은 저자가 공부하는 '동양의역학'과 감이당이라는 곳의 생활방식에 대한 일방적인 홍보와 찬사다. 감이당이라는 곳은 몸, 삶, 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문의역학을 탐구하는 밴드형 코뮤니타스란다. 소개글에서 부터 '인문의역학'이라는 한자단어와 '밴드'라는 영어, 코뮤니타스라는 라틴어(?)가 나온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코뮤니타스는 인류학자 빅터 터너라는 분이 만드신 개념인 듯하고 너무 어려워 이해는 잘 안되지만 협동조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책에서도 이와 같이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용어가 나온다. 입문서라면 배경지식 없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인 몸과 운명 카테고리에서 '글쓰기와 자기수련'과 '청소와 약속' 부분은 조금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전혀 공감되지 않는 주장이고 뜬금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 가장 싫었던 부분을 손 꼽자면 부록인 '내가 사랑하는 고전들'이다. 그냥 좋아하는 이유와 어떤 부분이 독자에게 도움이 될지를 이야기해주면 될텐데 굳이 한국고전에서는 '임꺽정'이 외국고전에서는 '돈키호테'가 최고라고 단정지으니 불편한 마음이 든다. 왠지 다른 고전소설을 좋아한다면 저급한 사람이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어떤 책이든 읽기 시작하면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 하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읽었지만 읽는내내 불편하고 괴로웠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전문적인 용어와 내용이 너무 많고 인문학 책이라고 하기에는 소재가 경박하고 얕다. 무엇보다 사회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너무 일방적이다. 성형에 대한서 동양의역학(?)을 들어 부정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성형을 한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는 나조차도 전혀 공감되지 않으니 많은 고민을 하고 성형을 한 당사자는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얻은 점이 있다면 책이라는 것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문장력도 필요하다는 점과 제목과 목차만 보고 책을 고르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보문고의 독자평점을 보니 별이 4개에서 5개가 많다. 어쩌면 내가 배경지식이 부족하여 이렇게 느꼈을수도 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